김기천 목사님
1-1. 잃어버린 영성을 찾아서
기독교의 회복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본질과 수단을 혼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이 알맹이라면, 학문, 교리, 신조, 간증, 예화는 이를 돕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껍데기는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어느새 그것이 본질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말씀 자체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외적인 성장과 활동에 집중한 나머지 내적인 성숙을 잃어버린 듯 보입니다. 그 결과 기독교의 깊은 영성도 함께 약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본문을 차분히 읽기보다, 교리나 주제에 맞게 편집된 말씀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이 방식은 가르치는 이의 의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며, 교단 간의 교리 차이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성경을 직접 대면하며 진리를 찾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해석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보다 사람의 설명에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천천히 읽고 묵상하는 수고는 비효율적으로 여겨지고, 많은 신자들은 그 과정을 대신해 줄 누군가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말씀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기독교의 참된 회복은 여전히 말씀으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1-2. 수도원 전통
기독교 역사에는 말씀을 통해 깊은 영성을 추구했던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이를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곧 “영성 독서”라 부릅니다. 이는 성경 본문을 신성한 마음으로 읽고, 묵상과 기도를 통해 삶으로 살아내는 수련법입니다.
이 전통은 구약에서도 발견됩니다. 이삭은 묵상을 위해 들로 나갔고(창 24:63), 시편은 율법을 묵상하는 삶을 복되다 말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초대 교회와 수도원을 통해 계승되었습니다. 수도사들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품고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존 카시안과 성 베네딕트는 성경 연구를 수도 생활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정해진 기도 시간뿐 아니라 찬송, 식사 중 성경 낭독을 통해 하루 전체를 말씀과 함께 살았습니다. 비록 완전한 성경을 갖지 못했지만, 사본과 성구집, 교부들의 글을 통해 말씀을 가까이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쉽게 성경에 접근할 수 있지만, 과연 그만큼 진지하게 말씀을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1-3. 수도하는 크리스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수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도자는 반드시 수도원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보다 분주한 도시 한가운데서 사역하심으로, 일상 속에서도 영적 삶이 가능함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장소나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모신 마음입니다. 화려한 성전에 있어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공허하며, 소박한 공간이라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이 성전입니다. 신앙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영성독서는 바로 이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영성독서는 성경을 단순히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말씀을 살아 있는 현실로 경험하려는 수련입니다. 수도사들은 묵상을 통해 성경 속 장면에 자신을 두었습니다. 이는 문자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1-4. 영성독서의 체계화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갔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귀했기에, 말씀은 기억되고 묵상되었고 삶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러한 전통은 약화되었습니다.
12세기 수도사 **구이고 2세(Guigo II)**는 이 영성독서를 네 단계로 체계화했습니다. 그는 이를 “수도사들의 사닥다리”라 불렀으며, 네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독서**(Lectio)** 는 성경을 천천히**,** 신중하게 읽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마음과 집중을 온전히 성경 본문에 둡니다
- 묵상**(Meditatio)** 은 그렇게 읽은 말씀을 통해 이성적인 사고로 영적 의미를 헤아리는 과정입니다**.**
- 기도**(Oratio)** 는 악한 것을 멀리하고 선한 것을 붙들기 위해**,** 헌신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응답입니다**.**
- 관조**(Contemplatio)** 는 마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품 안에서 영원한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독서는 은혜로운 삶의 달콤함을 갈망하게 하고, 묵상은 그 달콤함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하며, 기도는 그것을 실제로 찾게 하고, 관조는 마침내 그것을 맛보게 합니다.
1-5. 독서**(Lectio):** 말씀을 “입에 넣는 단계”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 나타난 독서의 기능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는 말씀을 읽을 때, 이 구절은 짧지만 매우 감미로운 맛을 지닌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입안에 넣은 포도송이와 같습니다. 이 말씀을 맛볼 수 있는 입이란, 영혼의 양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혼의 입을 말합니다.
영혼은 입안에 들어온 이 말씀을 천천히 바라보며, 그 안에 선한 것이 담겨 있음을 깨닫습니다. 먼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향해 돌아서야 합니다. 이는 마치 방탕한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제 영혼은 본문에서 말하는 **‘청결함’**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무엇이 마음의 청결함인지 질문하고,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발견해 갑니다. 말씀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야말로 참된 복을 받은 사람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다고 선포합니다.
더 나아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계속해서 칭찬을 받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혼은 이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입안의 포도송이를 물고 씹기 시작합니다. 마치 농부가 포도를 틀에 넣어 즙을 짜내듯, 영혼은 합리적인 사고를 사용해 마음의 청결함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습니다.
이 과정이 바로 독서에서 묵상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1-6. 묵상**(Meditatio):** 말씀을 “씹는 단계”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 나타난 묵상의 기능에 대한 설명입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 부지런히 묵상할 때, 묵상은 겉으로 드러난 문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묵상은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말씀의 요점들을 하나하나 깊이 살펴봅니다.
이 과정에서 묵상은 본문에 기록되지 않은 말, 곧 “몸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까지도 조심스럽게 검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몸”**이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단지 악한 행동을 멈추기 위해 손만 씻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로부터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 구약의 한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시 24:3–4)
또한 묵상을 통해 우리는 그 선지자가 마음의 청결함을 얼마나 간절히 구했는지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시 **51:10)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더 나아가 묵상은 ‘동방의 성자’라 불리는 욥이 이 마음의 청결함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조심했는지도 돌아보게 합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
욥은 헛된 것을 무심코 바라보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을 절제했습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는 욥이 청결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1-7 묵상 (2)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묵상의 기능에 대한 계속된 설명입니다.
구이고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라는 한 구절을 묵상하며 깨닫게 되는 진리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앞선 묵상을 통해 우리는 이미 **‘마음의 청결함’**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묵상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토록 소망하던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며 기쁨인지 마음에 그려봅니다.
그 얼굴은 더 이상 비천하거나 거절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마리아에게서 받은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부활의 날, 영광의 날에 **“갚아주신”(**시 18:24) 면류관을 쓰시고 불멸의 두루마리를 입으신 영광스러운 주님의 얼굴입니다. 이 소망이 이루어질 때의 풍성함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구이고는 묻습니다. 작은 포도 한 알에서 얼마나 많은 즙이 나오며, 작은 불꽃 하나에서 얼마나 큰 불길이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는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이 짧은 한 구절이, 묵상이라는 모루 위에서 두드려질 때 얼마나 새롭고 풍성한 의미를 드러내는지를 아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숙련된 장인의 손에 들린 쇠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빚어지듯, 말씀도 묵상을 통해 깊이를 더해 갑니다.
이 묵상의 암시는, 마음의 청결함이 가져다주는 영적 기쁨이 얼마나 달콤한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묵상은 그 달콤함을 향한 갈망과 열정을 더욱 불태웁니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방식으로 찾을수록 갈증만 깊어지고 고통이 더해집니다.
그 기쁨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이 지혜가 가져다주는 진리의 깨달음은 영혼을 기쁘게 하고,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도록 사명을 맡기셨지만, 죄를 용서하는 권세는 자신에게 남겨두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분이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요 1:33)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님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분이 우리의 영혼에 지혜의 달콤함을 주시는 분이시며, 지식을 달콤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지만, 영혼을 위한 지혜는 소수에게만 허락하십니다.
이 지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1-8. 기도**(Oratio):**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감
다음은 구이고의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기도의 기능에 관한 설명입니다.
묵상을 계속하다 보면, 영혼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소망하던 깨달음이나 영적 체험의 달콤함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더 낮추게 하며 하나님을 더 높이게 합니다. 그렇게 영혼은 자연스럽게 겸손한 기도로 나아가게 됩니다.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지지 않고서는 주님을 볼 수 없음을 고백하며, 독서와 묵상을 통해 마음의 청결함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던 간절한 바람을 아룁니다. 오랫동안 주님의 얼굴을 사모하며 묵상해 왔고, 그 사모함 속에서 주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정의 불이 타올랐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성경 말씀 안에서 작은 빵 조각처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영혼은 주님을 알면 알수록 더 깊이 알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제 주님은 더 이상 글자의 껍질로만 보이지 않고, 그 의미 속에 살아 계신 분으로 다가옵니다. 영혼은 이 모든 간구가 자신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자비하심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여인의 고백처럼 겸손히 말합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적어도 하늘의 신비에서 한 방울의 이슬이라도 내려 달라고, 메마른 영혼을 적셔 줄 은혜를 구합니다. 영혼은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1-10. 관조**(Contemplatio):**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단계
이어서 구이고는 『수도사들의 사닥다리』에서 관조의 효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혼은 사랑에 불타는 말로 주님께 자신의 처지를 아뢰며, 신랑 되신 주님을 간절히 부릅니다. 주님의 눈은 의로운 자에게 머물고, 그분의 귀는 겉으로 드리는 기도뿐 아니라 영혼 깊은 곳의 탄식까지도 듣고 계십니다.
주님은 갈급한 영혼이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기도를 가로지르듯 다가오셔서, 갑작스럽게 영혼을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달콤한 이슬을 내리시고, 귀한 기름을 부어 상한 심령을 회복시키십니다.
주님은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시고, 배고픔을 채우시며, 세상의 것들을 잊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영혼은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놀라운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영혼은 하늘의 달콤함에 잠기고, 깊은 깨달음 가운데 깨어나게 됩니다.
육체가 욕망에 지배될 때 사람이 전적으로 육적인 존재가 되듯, 관조의 단계에 이르면 반대로 모든 육적인 욕망이 정복당하고 뿌리 뽑히게 됩니다. 그 결과 육체는 성령을 거역하지 못하게 되고, 사람은 점점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관조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위로와 기쁨이 동시에 찾아오며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습니다. 이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하나님 임재 앞에서의 깊은 안정입니다.